'비난'보다 '이해' 먼저 하는 방역 대책이 필요한 이유
'비난'보다 '이해' 먼저 하는 방역 대책이 필요한 이유
코로나19 시대 젊은층과 여성 행복감 상대적으로 더 하락
최인철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코로나19 사회연구팀과 카오스재단이 기획한 '코로나토크' 강연에서 코로나19 시대에 한국인의 행복과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한 연구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코로나19 사회연구팀-카오스재단 영상 캡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한국인의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 대규모 심리 설문조사 결과 초안이 공개됐다. 남성보다 여성이,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사회경제적 계층이 낮을수록 행복감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특히 젊은 사람들의 행복감 하락은 언택트 시대에 이들 세대가 유독 크게 느끼는 '지루함'이 큰 원인을 차지하는데, 이 문제를 단순한 자제력 부족이나 도덕 불감증으로 과소평가할 경우 제2, 제3의 서울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는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코로나19 사회연구팀과 카오스재단이 공동 기획한 코로나19 온라인 전문가 강연 ‘코로나토크’에 4일 출연해 1월 20일부터 6월 15일까지 전국 62만 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의 응답 100만 개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최 교수는 한국인의 행복을 연구하기 위해 카카오와 함께 '대한민국 행복지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온라인 설문 조사 방식으로 2018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매일 3000~5000명이 직접 설문 문항에 응답을 한다. 2018년 120만 명, 2019년 150만 명이 참여했으며 올해는 6월 중순까지 61만 8571명이 참여해 총 100만648건의 데이터가 수집됐다. 최 교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행복의 변화를 연구하려면 팬데믹 이전과 비교할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전부터 진행해온 이 프로젝트 덕분에 자연스럽게 코로나 전과 후를 비교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한국인의 전반적인 행복감은 유행 초반에 두 차례에 걸쳐 급격히 하락하는 사태를 겪었지만, 4월 중순 이후 회복해 6월에는 팬데믹 초반 수준까지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당시 총선을 거친 직후로 팬대믹 상황에서 모범적으로 투표를 치러낸 국민적 자부심이 높아지고 철저한 방역에 대한 안도감으로 행복이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족감이나 긍정적 정서 등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다른 지표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정 반대의 감정인 '부정적 정서'는 반대 패턴을 보여 이 역시 행복의 전반적 등락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 특이한 것은 '삶의 의미'를 측정한 지표였다. 4월 중순 이후 회복을 하긴 했지만, 초반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 교수는 “코로나19가 삶에 대한 근본적 의심과 회의 등을 불러왔던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행복도(흰 선)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약간 하락했다 회복했고, 3월~4월 초 다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4월 중순 이후 서서히 회복했다. 파란 선은 세계의 환자 발생자 수고 노란색은 국내 환자 발생 수다. 코로나19 사회연구팀-카오스재단 영상 캡쳐●코로나 시대에 특히 젊은 세대가 정신적으로 힘들어...기성 세대는 과소평가 말아야
연령에서는 젊은 층의 급격한 감소가 눈에 띄었다(아래 그래프). 최 교수는 “코로나 시대에 정신적으로 더 힘든 건 젊은 사람들”이라며 “50대 이상에서는 오히려 행복의 변화폭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노인 층이 코로나19에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기 때문에 노인층에서 행복감이 감소하고 부정적 감정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이런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현재 코로나 이후를 진단하고 미래 대책을 세우는 사람은 대개 50대 이상”이라며 “이들이 젊은 사람들의 심리적 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가 정신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20대는 원래 청소년기나 중년 이후에 비해 행복감이 낮은 세대다. 직장부터 결혼까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어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팬데믹은 삶을 흔드는 부담이다. 예를 들어 직업을 결정해야 할 사람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항공, 공연 등 상당수 업종이 사실상 멈춰서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이들은 삶의 근본 방향을 바꿔야 하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힌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지루함을 나이든 세대보다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감각적인 활동을 추구하는데, 이에 대한 갈망이 감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정도로 크다. 이런 성향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데, 그렇다 보니 윗세대는 젊은 세대가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활동을 위해 모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참지 못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느냐”는 도덕적 질타를 한다.
최 교수는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보니 언택트로 해결이 안 되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이를 도덕적 비난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모이는 시설을 열어놓고 개개인이 절제력을 발휘해 가지 못하게 권하고, 간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을 유발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인간이 느끼는 ‘근본적 지루함’이라는 문제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차라리 원천 차단하는 게 사람들을 덜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빨간 그래프)는 50대 이상(녹색 선)에 비해 전반적인 행복감도 낮게 느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낙차도 컸다. 코로나19사회연구팀-카오스재단 영상 캡쳐 극복 방안으로 행복을 '관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행복을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사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나이가 든 사람이 택하는 방법이지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다”라며 “대안으로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새로운 퍼즐을 즐기는 등 구체적인 활동(액티비티)을 통해 마음관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마음관리 또는 행복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신경 쓸 필요도 있다”며 “다만 아직은 방역과 경제 회복에 신경쓰느라 국가가 여기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성, 사회경제적 약자 행복감 낙차 폭 커…‘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동시 강화 ’역설’도
여성과 사회경제적 약자의 행복감 낙차가 컸던 점도 이번 분석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다(아래 그래프). 여행 등 사회경제적 상위계층이 즐기던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팬데믹 시기에 이들에게서 행복감 저하가 나타날 것이라는 가설도 있었지만, 데이터는 사회경제적 하위계층의 행복감 저하가 훨씬 컸음을 증명해줬다. 최 교수는 “사회경제적 상위 계층은 팬데믹 시대에도 어떻게든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낼 여력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하위 계층은 그러지 못했던 게 큰 이유”라고 말했다.
행복은 사회경제적 하위계층(빨간 그래프)에서 더 낮았고,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회연구팀-카오스재단 영상 캡쳐 권위와 위계, 규범을 따르고 강력한 리더십을 중시하는 ‘수직적 집단주의’와 함께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수직적 개인주의'가 크게 강화됐다는 사실도 이번 분석에서 드러났다. 방역 등 코로나19 관련 대책이 주로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집단의 안녕을 위해 개인이 희생될 수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국가주의와 집단주의가 강해진 것이다. 최 교수는 “대부분 사람들이 정부의 효율성을 믿는 경우 높게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집단주의에는 규범과 위계, 리더십을 중시하는 ‘수직적 집단주의’와 서로 돕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수평적 집단주의’가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수직적 집단주의만 강화됐고 수평적 집단주의는 약해진 것으로 나왔다.
수직적 집단주의 강화의 이면에 수직적 개인주의가 강화된 점도 특이하다. 수직적 개인주의는 경쟁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다.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으로, 일종의 ‘각자도생’의 시각이다. 주로 정부의 사회 문제 해결 능력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국민들이 믿을 때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정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할 때 나타나는 수직적 집단주의가 강해진 한국에서 수직적 개인주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코로나19로 한국인의 감정이 복잡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며 “개인 희생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집단주의가 강화됐지만, 동시에 경쟁을 통한 각자도생을 받아들이는 역설적 패턴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화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 긍정적인 태도를 지닐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코로나19는 진행 중이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며 “잘못한 일이나 잘 안 되는 일만 너무 강조하기보다는 마스크 착용이나 개인 위생 등 방역 측면에서 우리 국민이 잘 한 점을 강조하는 것도 개개인의 내면의 힘을 기르고 코로나 시대에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점점 더 지쳐만 간다.
언제 종식 될 지 모르는 이 현실
빨리 끝났으면....